영화 인턴,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준 작품
영화 인턴은 저한테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저에게 인생을 알려준 영화라고 할까요?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저런 어른이 돼야겠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저를 돌아보고 제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잡아준 작품입니다. 한 사람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가 영화의 목적이기도 하니, 어쩌면 제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결국 제 인생을 바꾸기까지 한 것이니까요.
한 살 한 살 먹어갈 수록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게 다릅니다.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요. 그럴 때 이 영화를 보고 힘을 얻고 위안을 얻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누군가와 함께 극장에서 봤었는데요. 영화 '대부'를 보진 않았지만 (유튜브 쇼츠로 명장면만 조금 봤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회자가 많이 되어 듣기는 많이 들었었는데, '대부'의 주연이었던, 진짜 세계적인 연기 대부,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다고 해서, '도대체 얼마나 연기를 잘하길래 연기 대부일까?' 하는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봤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대부'의 유명한 그 장면들만 생각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임팩트가 없는데?' , '로버트 드니로 별론데?' 했는데 중반 후반으로 흘러갈 수록 아예 작품에 녹아들었구나, '대부'랑은 아예 다르게, 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별로라고 생각했던 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제 인생 영화 중 한 편인 영화 '인턴' 리뷰, 시작해보겠습니다.
영화 소개
2015년 9월 24일에 한국에서 개봉(북미에서는 9월 25일, 시간차, 주말 노림으로 거의 동시개봉이라고 보면 됨.)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코미디 드라마 영화입니다. 로버트 드니로, 앤 해서웨이 주연이고, 러닝타임은 121분입니다. 총 제작비는 7천만 달러로 800억이 넘게 들어간 작품인데 전 세계적으로 약 1억 9천만 달러, 2배 이상을 벌어들이긴 했지만 다른 흥행 영화들 치고는 많이 못 미치는 성적이었습니다. 그리고 7천만달러도 어디에 들어간 건지, 영화 장면들로만 보면 좀 의아하긴 한데 워낙 규모가 큰 곳이니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긴 하겠죠.
해외보다는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관객이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관객 수가 361만 명으로, 해외 흥행 국가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해외, 특히 북미는 박스오피스 매출 기준으로 볼 수 있어서 정확한 관객수를 알기 어렵지만,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독 대박을 쳤다고 하네요. 젊은 상사, 그것도 여자 상사가 나이 많은 인턴을 통해 성장한다는 내용이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잘 먹혀서 반응이 좋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관람객 평점도 9점대로 아주 높았고요.
줄거리 (스포 있음)
70세 벤 휘터커는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40년 넘게 일하고, 부사장까지 올라가서 은퇴한 사람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습니다. 여행도 다녀보고, 요가도 배워보고, 요리도 해보지만 뭔가 허전합니다. 은퇴 생활이 생각했던 것과 다릅니다. 일을 하고 싶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침 동네에 있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 어바웃더핏이 시니어 인턴을 모집합니다. 벤은 지원 영상을 찍어 보내고, 채용됩니다. 70세 인턴의 출근 첫날.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합니다. 회사는 T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20~30대로 가득한 스타트업입니다. 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겁니다.
벤이 배정받은 사람은 이 회사의 CEO 줄스 오스틴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줄스는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 규모로 회사를 키운 30대 여성 CEO입니다. 열정적이고, 직접 박스 포장도 하고, 야근하는 직원도 챙기고, 자전거 타고 사무실을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70세 인턴이 필요 없습니다. 귀찮습니다. 처음에는 벤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벤은 조용히 자기 자리를 만들어갑니다. 다른 직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정리 안 된 책상을 치워주고, 모르는 건 물어보면서 배우고, 아는 건 나서지 않고 도와줍니다. 사무실의 혼란스러운 테이블을 정리하는 장면, 젊은 동료에게 손수건을 빌려주는 장면. 이런 작은 행동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벤은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됩니다.
줄스도 점점 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외부 CEO를 영입하라고 압박하고, 남편과의 관계도 흔들리고, 엄마로서의 죄책감도 있고. 이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있던 줄스에게 벤은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조언을 구하지 않았는데 먼저 나서지 않고, 물어보면 경험에서 우러나온 한마디를 해줍니다.
로버트 드니로의 '벤'
굉장히 이상적인 캐릭터죠. 솔직히 말하면 벤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이 현실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범적이고, 겸손하고, 센스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그리고 따뜻한 사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어른이라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영화 보는 내내는 미소가 지어집니다.
70세면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기 쉽죠. 여태껏 살아오면서 높은 곳에도 올라가봤을 테고, 그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어른, 상사, 인생 선배 대우를 해주니까요. 꼰대가 안되기 어려운 환경이죠. 그래서 나이든 사람이 누군가 밑으로 들어가면 정말 서로가 곤란해지기 쉽잖아요. 근데 벤은 꼰대 같은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지 않죠. 위에 말한대로, 지켜야 할 선을 분명하게 알고 지킵니다. 회사의 문제점, 이 사람의 잘못된 점 다 알고 있음에도 충고도, 심지어 부드러운 조언조차도 꺼내지 않습니다. 왜냐? 자기는 인턴이거든요. (왠지 벤은 가족에게도 그럴 것 같지만 어쨌든 회사에서의 삶을 그리는 거니, 인턴이기에 더 선을 지키는 거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자기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겁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돼있는데 무슨 말을 해도 오히려 반발만 살 뿐, 전혀 통하지 않죠. 그래서 존경스러운 인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로버트 드니로의 다른 영화도 봤는데요. 택시 드라이버, 대부, 좋은 친구들.. 거기선 정말 강렬하더군요. 이렇게 할리우드에서 가장 강렬한 연기를 해왔던 배우가, 이 영화에서는 이렇게 조용하고 따뜻한 70세 할아버지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연기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싶습니다.
앤 해서웨이의 '줄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줄스도 정말 좋았는데요. 이전 리뷰에서 다뤘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패션 잡지 비서 역할이었다면, 인턴에서는 정반대로 CEO입니다. 지시를 받는 사람이 아닌지시를 하는 사람이죠.
줄스가 좋은 캐릭터인 이유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 대표로서는 유능하지만,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불안하고, 엄마로서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외부 CEO 영입 압박에는 흔들립니다. "다 잘하고 싶은데 다 잘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이 현실적입니다. 일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일하는 여성이라면 줄스의 고민에 공감이 안 갈 수가 없을 겁니다.
벤과 줄스의 관계가 이 영화의 핵심인데, 이 관계가 연애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합니다. 할리우드였으면 어떻게든 로맨스 요소를 넣었을 텐데, 이 영화는 그렇게 안 합니다. 벤과 줄스는 세대를 넘은 신뢰와 존중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더 아름답습니다.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은 이유는 유교문화 때문?
이 영화가 한국에서 해외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건 좀 생각해 볼 만합니다. 서양에서는 "괜찮은 영화" 정도였는데 한국에서는 361만 명이 봤습니다. 유교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인데요.
디테일하게 들어가보자면,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른에 대한 존경 문화
벤이 보여주는 경험과 지혜, 그리고 젊은 세대가 그것을 인정하고 배우는 과정. 이런 관계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한국 관객들한테는 자연스럽게 와닿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짐이 아니라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한국 정서에 맞는 겁니다.
-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공감
줄스가 겪는 고민들. 일 잘하는 여자에 대한 시선,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아내의 미묘한 입장.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컸을 겁니다.
나는 어떤 어른인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나이가 들었을 때 벤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경험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사람. 나서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있는 사람.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고, 답을 요청할 때 그때야 비로소 세심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래도 저는 11년 전 이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는 무조건 이런 어른이 될 거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고 잘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잘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점점 꼰대 같은 모습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나를 다잡고 꼰대끼를 누르고,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건 인턴 때문입니다. 인턴의 벤이 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에.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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