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 한국 영화 탑 5에 들만한 대작
송강호의 연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손꼽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죠. 최민식, 이병헌 등과 함께요. '송강호는 맡는 배역마다 느낌이 똑같다' 라고 하면서 이병헌 등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런 면에서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연기의 신이라는 건 모두가 동의하실 겁니다. 술자리에서의 인성 문제가 가끔 언급이 되긴 하지만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부분이니 논외로 하고요. 사실 인성은 영화와 연기를 말할 때 평가하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여튼 '살인의 추억'은 이런 송강호의 대표작 중 하나죠. 요즘 분들이야 변호사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실 테지만 그 이 전에는 '살인의 추억'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다시 봐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긴박한 전개와 신들린 연기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해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스토리, 감독의 기막힌 연출들...의미심장한 부분들도 많고요. 특히 마지막에 송강호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면, 그 눈...그 대사...'밥은 먹고 다니냐?'.. 한국 최고의 영화 중 한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출발점이기도 하죠.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시작점이기도 하고요.
영화 소개
2003년 4월 25일에 개봉했고요. 봉준호 감독의 시작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첫 작품은 아닙니다. 두번째 작품이고요. 송강호, 김상경 주연입니다. (요즘 김상경 배우가 많이 안 나와서 요즘 분들은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이 분도 연기 잘하고 굉장히 멋진 배우입니다.), 박해일, 김뢰하, 전미선, 변희봉 등이 출연합니다. 출연진도 빵빵하죠?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제작비는 약 32억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525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당시 이 정도 관객 동원은 엄청난 흥행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100억 넘게 쏟아부을 때, 32억으로 이 성적을 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이 "돈을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웰메이드 영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비평가상을 받았고,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춘사대상, 대한민국영화대상 작품상까지 국내 시상식을 쓸어담았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기 영화 리스트에 꼽아서 화제가 됐고, 기예르모 델 토로도 극찬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받을 때도 타란티노를 따로 언급하면서 "제 영화를 아직 아무도 모를 때 항상 리스트에 뽑아주신 분"이라고 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줄거리
이 영화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DNA분석을 통해 범인이 잡히면서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명칭이 변경된 그 사건입니다. 대부분의 스토리가 실제를 따라가죠.
1986년 가을, 경기도 화성의 논밭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강간 살해였습니다. 이어 비슷한 수법의 사건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지역 형사인, 송강호가 맡은 박두만이 수사를 맡습니다. 박두만은 "얼굴만 보면 범인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촌스럽고 고집스러운 형사입니다. 과학 수사 같은 건 모릅니다. 감으로 때려잡는 스타일입니다.
사건이 커지면서 서울에서 형사 서태윤이 자원해서 내려옵니다. 김상경이 연기한 인물인데요. 박두만과 정반대입니다. 논리적이고, 증거를 따지고, 체계적으로 수사합니다. 두 형사는 당연히 부딪힙니다. 수사 방식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세계관 자체가 다릅니다.
그러다 용의자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용의자는 지적 장애가 있는 남자 백광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향숙이?' 라는 대사로 유명한 배역입니다. 한때 성대모사도 엄청 했었죠. 박두만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폭력과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려 합니다. 이건 단순 영화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1980년대 한국 경찰의 수사가 많이 이랬었다고 하죠.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 등이 기본이 되기 전이었어서 더욱 그랬나 봅니다. 그렇게 백광호를 때려잡았는데.. 백광호는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용의자가 나타납니다. 특히 박해일이 연기한 세 번째 용의자가 등장했을 때의 긴장감은 대단합니다. 이 사람이 범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증거가 애매합니다. 결국에 형사들은 미국에 DNA 감정을 의뢰하죠. 1980년대 한국에는 DNA 분석 기술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계속 행적을 좇으며 결과를 기다리다 드디어 결과가 왔는데, 불일치. 또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순간 서태윤이 무너집니다. 그동안 논리와 증거로 접근하던 사람이, 분노에 사로잡혀 용의자를 죽이려 합니다. 반대로 박두만은 서태윤을 말립니다. 감으로 수사하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증거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두 형사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죠. 초반의 서로의 입장과 반대가 됩니다.
실제로 이 사건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됐던 만큼 영화에서도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습니다. (2019년에 범인이 잡혔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도 당연히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 2003년의 박두만을 보여줍니다. 형사를 그만두고 평범한 사업가가 된 박두만이 옛 사건 현장을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대사를 말하죠. "밥은 먹고 다니냐?"
이 영화가 주는 의미
보통의 범죄 영화는 범인을 잡으면서 끝납니다. 그걸 보고 관객은 안심하고, 쾌감을 느낍니다. 정의가 실현됐구나 하고요. 그런데 살인의 추억은 미제로 끝납니다. 그 안심을 주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도 범인은 어딘가에서, 어쩌면 우리 곁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죠. 관객 옆에 앉아 같이 웃으며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 실제로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공포는 현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무력감이었습니다. 형사들이 최선을 다하고, 밤을 새워가며 수사했음에도 잡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한계, 기술의 한계, 시스템의 한계.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뚫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것. 그 느낌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범죄 영화인데 동시에 시대극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대사의 의미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이 다르게 되기도 했던 대사인데요.
일단 이 대사는 봉준호 감독이 대사를 정하지 않고 송강호에게, '박두만이라면 여기서 가만 있지 않고 뭔가 말을 할 것 같다' 라고만 던져줬다고 합니다. 이에 송강호가 여러차례 뱉다가 하나가 낙점된 게 바로 이 대사인 건데요. 어떤 의미인지 나중에 물어보니 "너 같은 놈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는 의미였다고 하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미인데요.
이 영화가 상영 중일 때는 관객들이, 말 그대로 '끼니는 안 거르고 잘 먹고 다니냐'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으로, 동정이나 연민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고 하네요. 전 잘 이해가 안 가지만 하하..
근데 이런 중의적인 말들이 담겨있는 우리나라 언어의 특성으로, 그리고 송강호와 봉준호 감독의 이러한 의도로 명장면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외국에서 상영할 때 번역은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냐?) 로 됐다고 하지만요. (문학 작품이나 언어로 된 예술작품(영화포함)을 접하고, 전파하고 할 때의 가장 큰 아쉬움이 원래 의도의 100%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은 저 부분 번역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번역가가 잘 번역해줘서 이후에도 믿고 맡기는 번역가가 됐다고 하네요.)
마지막, 카메라르 바라보는 송강호의 눈빛
봉준호 감독은 10주년 토크에서 이 장면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형사와 범인이 눈을 마주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범인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도 있으니, '경찰은 언제나 너를 찾고 있다', '경찰 뿐 아니라 아직 많은 사람들이 너가 잡히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너를 잊지 않고 있다' 라는 메세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던 거죠.
봉준호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도 "기억하는 것이 범인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라고 말했고요. 이런 장면을 구상하고 연출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처음 있는 시도였기에 놀랍고, 역시 한국 영화의 거장은 다르구나 싶습니다.
2019년, 진범이 밝혀졌을 때
영화가 개봉한 건 2003년이고,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진 건 2019년입니다. 16년이 지나서야 범인 이춘재의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끝내 잡지 못했던 범인이 현실에서 잡힌 겁니다.
범인이 밝혀졌다는 뉴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 더욱이나 잊지 않고 많은 국민들이 그 범인이 잡히길 고대하고 있었고, 경찰분들도 미제사건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결국 이렇게 잡힐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 많은 미제 사건들이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매체를 통해 많이 다루어지고, 계속 언급이 되며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더, 진범 이춘재가 잡히기 전에 이춘재를 대신해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윤성여 씨인데, 이춘재가 저지른 8번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죠. 무려 20년입니다.. 영화에서 애먼 사람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난리를 치는데, 현실에서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감옥까지 가게 된 거죠. 20년이면 너무도 긴 세월인데, 진범과 시대가 만든 억울한 희생자입니다. 이 영화가 시대의 초상화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부디 지금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살인의 추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제가 감히 한국 영화 탑 5에 들만한 영화라고 꼽는 작품입니다. 볼만한 영화 없나, 작품성 있는 좋은 영화 없나 하고 찾으시는 분들께 꼭 한번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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