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줄거리 결말, 다시 보니 미란다가 이해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정말 센세이션한 영화였어요. 모두가 이 영화를 얘기할 정도로요. 포스터만 봤을 때는 제 취향은 아니었는데, 저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는 안 보면 못 배기는 타입이라 영화관에 가서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대화에 끼고 싶어서 보고싶은 맘도 있었습니다 ㅎㅎ)
그때는 당연히 앤디 편이었습니다. 악마 같은 상사 밑에서 고생하는 신입사원.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란다는 그냥 무서운 사람이었고, 앤디가 마지막에 핸드폰을 분수대에 던지는 장면에서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잘했다, 그런 데서 나와야지..!
그런데 서른이 넘어서 다시 보니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됐습니다. 미란다가 어느 정도는 이해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상한 일이죠. 20대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직장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니까 미란다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조직의 꼭대기에서 무슨 압박을 받고 있는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뭘 포기해야 하는지. 앤디의 성장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영화가, 사실은 미란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물론 미란다가 권력에 쫓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그런 부분은 별로지만요.)
2006년에 개봉해서 전 세계에서 3억 2,6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이 영화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예쁜 옷이 많이 나오는 패션 영화가 아닙니다. 보는 나이에 따라 감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영화입니다. 회사생활을 계속 하고 계신 분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를 포스팅하기로 결정하고 자료를 다시 찾아보는 과정에서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요. 2026년 4월, 20년 만에 속편이 개봉한다고 합니다. 깜짝 놀랐네요. 우연히 생각이 나서 유튜브를 찾아보며 내용 복기하고 있었는데 속편이라니 ㅎㅎ 생각보다 속편이 늦게 제작되는 건데, 여튼, 속편을 보기 전에 1편을 한 번 보고 속편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본 정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로런 와이스버거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이 연출했고요. 2006년에 개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10월 25일에 개봉했고, 2017년에 재개봉도 했습니다. 9년 전이네요. 20대 마지막일 때였습니다ㅎ 러닝타임은 109분, 12세 이상 관람입니다.
메릴 스트립이 패션 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 역을, 앤 해서웨이가 비서 앤드리아 삭스(앤디) 역을 맡았습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선배 비서 에밀리 역으로(그러고보니 배역과 이름이 같네요), 스탠리 투치가 아트 디렉터 나이절 역으로 출연합니다. 원작 소설의 작가 와이스버거는 실제로 미국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밑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험이 있고, 미란다 프리슬리는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작비 대비 약 10배에 가까운 흥행을 기록했고, 메릴 스트립은 이 작품으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메릴 스트립이 이 역할이 자신의 마지막 메소드 연기였다고 회고할 정도로 깊이 몰입한 작품입니다. 그만큼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최고였습니다. 다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의 외모에 대해서 얘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이토록 이슈가 된 건 메릴 스트립의 신들린 연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엄청 프로페셔널이 느껴지는 게, 촬영 기간 동안 일부러 다른 제작진과 거리를 두면서 미란다의 냉정한 분위기를 유지했다고 하죠. 수개월 연기를 했을 텐데 완벽한 연기와 결과를 위해 이토록 몰입하는 환경을 유지한다는 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웠을 것 같은데 대단하더라구요.
줄거리
앤디는 노스웨스턴 대학 저널리즘 스쿨 출신으로, 기자가 꿈인 사회 초년생으로 나오는데요. 이력서를 여기저기 돌리다가 엉뚱하게도 패션 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비서 자리에 붙습니다. 패션에 관심도 없고 명품 브랜드 이름도 모르는 앤디에게 런웨이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는 패션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이죠. 말 한마디로 디자이너의 운명이 바뀌고, 눈빛 하나로 직원들이 얼어붙습니다. 앤디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끝이 없습니다. 미출간 해리 포터 원고를 구해 오라는 황당한 요구, 허리케인이 와도 비행기를 띄우라는 지시, 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울리는 전화. "그게 다야?"라는 미란다의 시그니처 대사는, 앤디가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버티기만 하던 앤디가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나이절의 도움으로 옷을 바꿔 입고,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미란다의 취향과 스케줄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놀라운 건 앤디가 진짜로 유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미란다도 그걸 알아봅니다. 선배 비서 에밀리 대신 파리 패션위크에 앤디를 데려가기로 결정할 정도로.
하지만 일을 잘하면 할수록 앤디의 사생활은 무너집니다. 남자친구 네이트와는 점점 멀어지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집니다. 파리에서 앤디는 결정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미란다가 나이절을 배신하는 순간입니다. 나이절에게 약속했던 승진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립니다.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밀어내는 미란다의 모습을 보면서 앤디는 깨닫습니다. 이 자리에 계속 있으면 나도 저렇게 된다.
미란다가 차에서 내리며 핸드폰으로 지시를 하는 순간, 앤디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핸드폰을 분수대에 던져버리고 돌아섭니다. 그렇게 런웨이를 떠난 앤디는 자기가 원래 꿈꿨던 저널리스트의 길로 돌아가죠.
20대 때와 30대 때,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저는 20대 때 이 영화를 보고 "미란다는 나쁜 상사, 앤디는 용기 있는 신입"이라고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그게 사실 보통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미란다의 입장도 이해가 가게 되었는데요.
우선, 미란다가 파리 호텔 방에서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 소식을 앤디에게 말할 때. 그때 미란다의 표정을 보면, 이 사람이 그냥 본투비 악마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무슨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편도, 아이들과의 시간도, 인간적인 관계도 전부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직장 생활 좀 해보고 나니까 미란다의 방식이 마냥 부당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비서에게 미출간 해리 포터 원고를 구해 오라는 건 미친 소리가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제대로 해내야 진짜 실력"이라는 미란다의 철학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도 그런 상사가 분명히 있습니다. 밉기도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사람 밑에서 가장 많이 배웠다고 느끼게 되는 상사. 미란다가 딱 그런 캐릭터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나에게 가르침을 많이 주고, 혹은 굳이 가르침을 직접 주지 않아도 내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정말 일 잘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내가 성장하는 계기가 돼서 결국 좋은 상사로 마음에 남게 되더라구요. 나도 성질머리 빼고는 어느 정도는 저런 모습을 닮아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앤디가 런웨이를 떠나는 결말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0대 때는 "잘했다, 나왔어야지"였는데, 지금은 좀 더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앤디는 미란다가 되기 싫어서 나간 건데, 과연 저널리스트로 성공하면 미란다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분야든 꼭대기에 올라가면 비슷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이 영화가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깊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룰리언 블루 스웨터 장면에 대해서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세룰리언 블루 스웨터 장면을 꼽겠습니다. 앤디가 패션에 관심 없다는 티를 내면서 웃자, 미란다가 길게 한마디를 합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그 세룰리언 블루 스웨터는 네가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것 같겠지만, 사실은 몇 년 전 어떤 디자이너가 컬렉션에서 그 색을 쓰고, 그것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퍼지고, 그게 백화점으로 내려오고, 할인 매장으로 내려오고, 결국 네가 손에 잡은 것이라고.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미란다가 단순히 잘난 척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패션이라는 산업이 어떤 구조로 돌아가는지, 그리고 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어떤 것인지를 단 30초 만에 보여줍니다. "나는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태도인지를 찔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분야를 좀 알게 되고 나서야 얼마나 건방진 태도였는지를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모르면서 무시하는 게 가장 부끄러운 거더라고요. 미란다의 그 대사가 영화를 넘어서 현실에서도 가끔 생각납니다.
에밀리블런트의 연기도 압권
지금 에밀리블런트의 입지에 비하면 에밀리블런트가 연기한 에밀리의 비중은 적지만 마지막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실제로 헐리우드에서도 인정을 받아 이후 승승장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선배 비서 에밀리는 파리 패션위크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입니다. 그 꿈을 위해 다이어트도 하고, 몇 년을 미란다 밑에서 버텼죠. 그런데 앤디가 더 잘한다는 이유로, 에밀리 대신 앤디가 파리에 가게 됩니다. 에밀리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표정.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배신감과 무력감이 뒤섞인 그 표정이 정말 리얼합니다. 에밀리 블런트가 이 영화로 확실히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연기였습니다. 앤디와 미란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다시 볼수록 에밀리가 눈에 밟히더라구요.
직장 생활을 해보면 에밀리 같은 상황이 실제로 있죠. 오랫동안 꾹 참고 버텼는데 나중에 온 사람이 더 인정받는 상황. 그게 능력 차이 때문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 연기가 그런 감정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속편 소식
2026년 4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개봉합니다. 20년 만입니다.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까지 원년 멤버가 전부 돌아옵니다.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도 다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속편의 배경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종이 잡지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인플루언서와 유튜버가 트렌드를 만드는 시대에 런웨이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미란다의 제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떠났던 앤디가 다시 돌아온다는 구조입니다. 예고편을 보면 미란다가 옛 비서들인 앤디와 에밀리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한 장면만으로도 미란다 건재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속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반반입니다. 1편이 워낙 완벽하게 끝났기 때문에 굳이 속편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20년이라는 시간이 캐릭터들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특히 앤디가 다시 런웨이로 돌아간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20대에 나왔던 사람이 40대에 다시 들어간다면, 이번에는 미란다를 다르게 볼까요. 아니면 결국 또 같은 결론에 도달할까요.
어쨌든 속편을 제대로 즐기려면 1편은 한 번 보고 가셔야 합니다. 출연진들이 그대로 나오고 내용이 연결되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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