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장기 기억 유지의 핵심 메커니즘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기억을 유지하는 조절자가 신경세포(뉴런)가 아닌 뇌 속 '별세포(아스트로사이트)'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규명된 것입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은 한국뇌연구원(KBRI)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별세포 내 특정 단백질이 장기 기억을 붙잡아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이번 발견은 치매나 노화로 인한 인지 저하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왜 신경세포가 아닌 별세포에 주목해야 하는가
장기 기억을 유지하는 숨은 조절자, 별세포의 발견
기존의 뇌 과학 연구는 정보를 전달하고 저장하는 신경세포인 뉴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학습 후 수주에서 수년간 기억이 유지되는 정확한 원리를 뉴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내 연구진은 뉴런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주변 환경을 조절하는 별 모양의 교세포인 '별세포'에 주목했습니다. 연구 결과, 별세포는 단순히 뉴런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장기 기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직접 관여하는 핵심 세포임이 밝혀졌습니다.
기억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핵심 단백질 'Ank2'
연구진은 별세포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Ank2(Ankyrin-2)' 단백질이 장기 기억 유지의 핵심 열쇠임을 확인했습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별세포에서 Ank2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를 관찰한 결과,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Ank2가 없는 생쥐는 학습 직후의 단기 기억은 정상적으로 유지했으나, 2주가 지난 후 측정한 장기 기억은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Ank2 단백질이 초기 기억 형성 이후 이를 장기적으로 보존하는 데 필수적인 성분임을 뜻합니다.
별세포는 어떻게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는가
엔그램 신경세포와의 물리적 접촉과 구조적 안정화
Ank2 단백질이 결핍된 별세포는 그 구조가 정상 세포에 비해 눈에 띄게 단순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기억을 저장하는 뇌 속 세포인 '엔그램(engram) 신경세포'와의 물리적 접촉 면적이 감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습과 기억 형성의 핵심 과정인 '장기강화(LTP)' 유지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별세포가 구조적으로 뉴런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접촉을 유지해야만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오래 유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칼슘 신호 전달과 BDNF 반응의 메커니즘
분자 수준에서 세포의 움직임을 분석한 결과, Ank2는 별세포 내부의 칼슘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Ank2가 사라지면 칼슘 신호가 약해져 뇌 발달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에 대한 반응성도 함께 감소했습니다.
세포 간의 신호 주고받기가 원활하지 못하면 뇌는 장기 기억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연구진은 역으로 광유전학 기술을 사용해 별세포의 BDNF 신호 경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실험동물의 기억 유지 기간이 기존보다 길어지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미래의 치매 치료 방향
뉴런 중심에서 별세포 표적으로의 관점 전환
이번 연구는 기억력을 향상시키거나 퇴행성 뇌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뉴런이 아닌 별세포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입니다. 뇌 세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교세포를 제어하는 방식은 향후 뇌 과학 연구의 판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연구를 주도한 IBS 고우현 연구위원은 신경세포 중심으로 이해되던 기억 연구의 관점을 별세포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포 신호만 인위적으로 조절해도 인지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 및 다양한 인지 저하 질환으로의 확장 가능성
이번 발견은 노화나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는 물론,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치료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손상되거나 퇴화한 뉴런을 직접 살리는 것보다 별세포를 통해 우회적으로 뉴런을 보호하고 기능을 활성화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향후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 등 뇌 발달 장애 분야에서도 별세포의 Ank2 단백질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연구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별세포와 뉴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기존에 기억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뉴런(신경세포)은 정보를 입력받고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이번에 규명된 별세포는 단백질 'Ank2'를 통해 뉴런과의 물리적 접촉을 조절하며, 이미 형성된 기억이 수주에서 수년간 사라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되도록 지탱하는 핵심 제어 능력을 가집니다.
Q2. 별세포의 Ank2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동물 실험 결과에 따르면 Ank2 단백질이 결핍되어도 학습 직후의 단기적인 최근 기억은 정상적으로 유지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옛 기억을 떠올리는 장기 기억 능력이 크게 떨어지며, 뇌 속 구조가 단순해져 기억 저장 세포와의 신호 전달이 원활하지 못하게 됩니다.
Q3. 이 연구 결과가 실제 치매 환자 치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뉴런을 직접 자극하는 과거 방식과 달리, 뇌 속 별세포의 BDNF 신호나 Ank2 단백질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여 인지 저하를 막는 새로운 메커니즘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알츠하이머병이나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예방하고 회복시키는 새로운 치료적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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